[이데일리 한근태 칼럼니스트] 글을 쓴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한스레터 때문에 매주 하나는 기본이고 이데일리, 각종 사보, 출판사의 약속 때문에 늘 써야 할 글이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다. 하나의 숙제를 끝내면 다음 숙제가 기다리고 있고, 이 고개를 넘으면 다음 고개가 기다리고 있는 격이다. 더구나 글을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글에 대한 기대 수준이란 게 생겼다. 대충 쓴 글은 나도 실망스럽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실망만 준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마감일을 앞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전쟁터에 끌려갈 때 스트레스의 세 배쯤” 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생각도 해 본다. 새로운 시상(詩想)이 넘칠 때는 자판만 두드리면 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써 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늘 다음 격언이 떠올라 나를 못살게 군다. “글을 쓰는 것은 수표를 발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상(思想)이 없는데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은행에 잔고가 없는데 수표를 발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할 말도 없으면서 뻔한 소리로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할 만한 일이다. 글을 쓰면 우선 사람과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예사로이 봐 넘기던 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여러 곳에서 소재거리를 찾게 되기 때문에 호기심도 강해진다. 책도 많이 읽게 되고, 시간만 나면 영화관에도 가게 된다. 인기 있는 물건이나 장소가 있으면 그것을 구입하고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시간이 생기면 여행도 가게 된다. 가서 무엇인가 느끼려 하고, 스스로를 새롭게 무장하려고 애쓰게 된다. 또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봐도 미워하기에 앞서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자라온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잘못된 믿음 때문일까, 저런 행동을 계속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결국 본인에게 큰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저 스쳐 지나갔던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된다. 오만가지 생각이 구천을 맴돌 때가 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하루에도 수 십번씩 성을 쌓다가 부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저 꾹 참고 속으로 새기느라 답답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전여옥씨는 “워드프로세서는 단순한 타이핑 기계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공감한다. 글을 쓰다 보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것과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이 구분된다. 어설픈 것은 글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나 자신을 갈고 닦게 된다.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무엇보다 진정한 나와 마주서게 된다. 글로는 나를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다른 사람들 틈에서, 타인과 주파수를 맞추느라 돌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을 뒤돌아보기 위해 써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써야 한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써야 한다. 내일을 위해 써야 한다. 글을 쓰는 것만큼 투자 대비 효과가 큰 것도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