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0년 내에 일어날 수 있다'는 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게 통일이다. 그런데도 통일 얘기하기를 꺼린다. 통일비용 때문이다.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본들 대부분은 "갑자기 통일되면 감당하기 힘들 텐데"라고 얘기하는 게 고작이다. 기껏 한걸음 더 나아간들 "그러니 가급적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통일하자"는 정도다.
충격과 비용을 줄이면서 통일할 수 없는 것일까. 독일 통일에서 답을 한번 찾아보자.
통일 전에도 동독 지역에 공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공장들은 옛 소련권밖에는 어디에도 팔 수 없는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 시설도 너무 낡아 그런 물건조차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상태였다. 서독 기준으로 보면 그건 공장설비가 아니라 녹슨 쇳덩어리였다.
통독의 더 큰 문제는 공장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에 몸이 익어 '일을 해야 먹고산다'는 개념이 흐릿한 동독 근로자의 생산성은 서독의 3분의 1이었다. 생산성이 원체 낮아, 양독 간의 격차를 해소하려는 명분으로 정부가 권유한 고임금을 주고는 데려다 쓸 수가 없었다. 통일 후 동독의 생산은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고, 제조업 부문의 동독 근로자는 3분의 2가 일자리를 잃었다. 전주대 김창권 교수도 "가장 큰 통일비용은 인적자본의 파괴"라고 본다.
동독 사람들은 졸지에 사회보험에 의지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1991년 이후 14년 동안 1조2800억 유로 전체 통일비용의 반(49.2%)이 동독인에 대한 연금이나 생활보조금에 쓰였다. 지금도 많은 동독인은 '2등 시민'으로 남아 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통일이 되기 전에 가급적 인적 격차를 좁히라"는 한마디다. 동독 근로자의 생산성이 서독에 근접했다면, 통일비용이 반으로 줄고 사회통합도 순조로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소득격차가 1 대 2였던 동.서독 간에도 이랬는데 격차가 1 대 15인 남북한 간의 문제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도로.전기.통신시설 등은 옛것을 걷어내고 새로 깔면 된다. 하지만 사람은 걷어낼 수 없다. 2300만 명의 북한주민에게 남한의 최저생계비만 지급해도 매해 10조300억원이 든다. 시장경제에서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한주민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갖는 가치, 즉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남북 간 장벽이다. 그 장벽을 넘어 북한인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건 거래를 통해서다. 통일이 되기 전에라도 남한 등과 거래를 트면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생산성을 높일 유인이 생길 것이다. 대외 거래로 북한의 생산성이 오를수록 급작스러운 흡수통일의 두려움은 줄어들고 통일도 순탄해진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용승 수석연구원 같은 이는 "유럽이 경제 통합하듯이 통일을 해보자"고 한다. 남북한 간에 경제교류 확대로 시작해, 자유무역지대와 한반도 경제 통합을 거쳐 통일로 착착 나아가자는 제안이다.
북핵 같은 문제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이 통합의 길로 가보면 어떨까. 남북한 간에 돈과 물건이 자유롭게 오가게 해, 지금부터 북한동포를 시장경제에서도 쓸모 있는 일꾼으로 탈바꿈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