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1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 아파트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그동안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득보다 실이 많다"며 반대해 온 민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결국 포함됐다. 민간 분양원가 공개는 권 부총리뿐 아니라 여당 정책위 의장인 강봉균 의원도 반대했다. 그러나 다수 여당 의원의 밀어붙이기에 손을 들고 말았다.
정부는 이 같은 방향 전환에 대해 "전문가들은 분양원가 공개에 우려를 제기했지만, 일반 국민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책 중에는 국민 여론에 따라야 할 일도 있지만, 장기적인 득실을 따져 눈앞의 여론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일도 있다. 정책이 가져올 효과 및 부작용을 종합.평가해 전문성 있는 정책을 만들라고 따로 공무원 조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의문스럽다.
분양원가를 공개한다고 집값이 떨어질까. 정부가 밝혔듯이 대부분의 전문가는 회의적이다. 우선 시세와의 차익 부분에 대해 채권입찰제를 실시하니 실제로 분양가 인하 효과는 크지 않다. 또 한 해에 공급되는 신규 아파트는 기존 주택시장의 3% 정도다. 설사 원가공개를 통해 아파트 분양가가 조금 낮아진다 해도 이것이 전체 집값을 끌어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건설업체는 기업의 각종 노하우가 녹아 있는 분양원가를 공개하느니 아예 주택사업을 접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또 분양원가를 공개한다 해도 이의 정확성과 관련한 시비가 끊이지 않아 기업 운영 자체가 힘들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에 따라 민간에 의한 주택공급이 축소되면 집값은 오히려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주택 공급 가운데 민간이 공급하는 비율은 70%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민간 분양원가 공개를 투기과열지구에서만 실시하면 수요가 몰린 지역의 공급을 줄임으로써 역효과는 더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원가 공개를 통한 가격 규제로 시장 전체의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부터 인정하지 않겠단 의미다. 이는 주어진 시장가격 내에서 원가 절감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시장경제 작동의 동인을 말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칙은 한번 허물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 정부는 국민 정서에 기댄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말고, 원칙에 충실한 장기적 정책 수립을 위해 소신 있게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