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근태 칼럼니스트] 얼마 전 스승의 날 제자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중 가장 효용성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요즘 회사 생활은 어떤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모 기업 부장으로 있는 친구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MBA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실무적인 경험을 이론적인 틀 속에 집어넣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시간 지키기의 소중함’ 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것에 대해 별 개념이 없었고 늦으면 늦는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대로 살아왔었거든요. 회사에 복귀한 후 미팅 시간도 칼 같이 지키고, 리포트 제출 데드라인에 목숨을 걸었더니 사람들 눈빛이 달라지는 겁니다. 시간을 잘 지킨다, 약속을 이행한다는 것이 중요한지는 알았지만 이 정도로 중요한지 미처 몰랐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늘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살았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만날 사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만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만남의 품질이 높아지고, 만난 사람은 정 회장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나는 평소에 시간약속 준수를 매우 강조하는 편이다. “수업시간에 늦을 바에는 아예 결석을 해라, 수업 시간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이 무슨 리더 교육을 받냐. 리포트도 그렇다.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데드라인 엄수다. 데드라인을 못 지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리포트도 좋은 점수 받기를 기대하지 말아라” 그렇게 잔소리를 하지만 몇몇 학생은 완전 무시한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저런 학생을 제자로 키워야 하는가, 아니면 아예 낙제처리 해야 하는가. 사소한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이 밖에 나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나는 약속을 지키는 데 병적으로 집착한다. 늘 일찍 가서 기다리고 나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시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충분한 시간을 앞두고 움직이게 되면 무엇보다 마음이 평화롭다. 여유 있게 책도 볼 수 있고, 길거리를 기웃거리며 구경도 할 수 있고, 사람들 표정도 살필 수 있다. 배우는 것이 많다. 그야말로 온전한 내 시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쫓길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시계만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움직이는 것이다. 시간 품질 면에서 볼 때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또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갈 경우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세미나 강사와 개인적인 친교의 시간도 가질 수 있고, 일찍 도착한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간을 잘 지키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택시 탈 것을 전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니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가는 것은 꽤 괜찮은 투자 행위다. 늦게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손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