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매겨진 한국 사회의 외국인 호감도(외국인에게 얼마나 덜 배타적인가) 순위다. 2005년 53위에서 두 계단 더 떨어졌다. 전체 국가 경쟁력은 2000년 29위에서 2006년에는 38위로 밀려났다. 경직된 노사관계로 노동시장 경쟁력은 43위에 불과하고, 교육경쟁력은 42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아무리 넓은 세상이 열려도 이런 실력으로는 제대로 경쟁할 수 없다. 멕시코는 1992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뒤 매년 200억 달러 안팎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받았지만 경제성장률은 2~3%에 그쳤다. 중국 등 새로운 생산기지가 생길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내부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밖으로 열린 만큼 안으로도 열려야 한다. 배타적이고,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국민 마인드를 바꾸지 않으면 한·미 FTA의 과실(果實)을 극대화할 수 없다. 정진호 경쟁력평가원장은 “한·미 FTA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면 외국인 차별 마인드를 걷어내고, 갈등으로 낭비되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뿌리깊은 외국인 차별=지난해 외국인 국내 체류자는 82만명으로, 불법체류자까지 합하면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외국인은 여전히 살기 힘들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올 연초 실시한 ‘국내거주 외국인 소비생활 실태’에 따르면 외국인의 41%가 한국에서 물건·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불편을 겪었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백화점 시식코너에서 맛을 봤다는 이유로 물건을 강제로 사도록 강요당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가장 큰 불편은 언어소통의 곤란(35.9%)이었고, 외국인에 대한 배려 부족(28.3%), 경제력 부족(22.0%) 등의 순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학대는 폭발 직전이다. 9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친 여수출입국관리소 화재참사가 이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간 네팔 근로자들은 기계에 손목이 절단되고 맞아서 온몸에 멍이 든 채 쫓겨온 자신들의 사진과 학대 내용을 달력으로 만들었다. 베트남에는 한국 취업용으로 “왜 때려요. 우리도 사람이잖아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라는 한국말을 가르쳐 주는 교재까지 나왔다.
◆외국인 없는 제조업 불가능=외국인 노동력의 도움 없이는 한·미 FTA에 따른 미국 기업과의 무한경쟁을 이겨낼 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0년이 되면 전문기술 인력과 비전문 기술인력 모두 각각 100만명 이상 부족 현상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2015년과 2020년에는 각각 140만명, 200만명으로 부족 인력은 꾸준히 증가한다.
안산이주민센터의 류성한 목사는 “합법 노동자는 일반 중소기업, 불법 노동자는 저가의 가구·프레스산업 등으로 이미 노동분업 체계가 이뤄져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가 없는 제조업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갈등 해소 시스템의 실종=한국 사회는 지금 갈등 해소 시스템의 부재(不在)에 시달리고 있다. 각자가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나머지, 각 분야별 ‘부분 최적(最適)’만 있고 전체 이익을 극대화하는 윈·윈(win-win)의 시스템은 실종됐다.
고속철도는 서로 자기 동네로 역사(驛舍)를 들여놓으려는 바람에 공사가 연기되고, 서울과 인천을 운하로 잇는 경인운하사업은 사업 타당성 여부도 결정하지 못한 채 10년째 팽팽한 줄다리기만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IMD가 평가한 국내 수송 효율성은 세계 35위 수준에 그쳤다. 도로면적은 세계 25위, 철도는 27위이다. 자기 앞의 이익만을 바라보고 싸우다 보니, 그새 우리나라의 물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높아진 땅값으로 토지수용이 어려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강한 변화의 갈망=그러나 한국인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 강해 한·미FTA라는 외부 충격을 내부 개방의 기폭제로 활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IMD 조사에서 글로벌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태도는 세계 13위였다. 사회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 인식도 한국이 16위로 높게 나타났다.
정진호 경쟁력평가원장은 “우리 국민들은 개방을 원하고 있고, 제대로 된 뒷받침만 주어지면 한 단계 도약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산업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근로자 경쟁력은 66개국 중 54위로 낮지만, 기업가와 전문가의 경쟁력은 14위와 15위로 높은 편이다.
이 같은 사람의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해선 배타성과 갈등의 마인드를 개혁해야 하며, 대화와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과)는 “제조업 중심의 외국인 인력 도입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의 고급인력을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결국 인력시장의 개방이 배타성을 낮추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갈등은 모든 사람이 일리가 있다는 뜻”이라며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적인 타협문화를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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