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성장 업종의 한계를 극복한 기업들, 이런 점이 다르다 | | 유호현 | 2006.12.15 | 주간경제 915호 | | 잠재성장률 저하와 내수부진 등으로 국내 내수산업의 환경은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저성장 산업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성과를 기록하고 있는 21개 기업을 발굴, 성장 전략을 살펴본다. 젝 웰치의 뒤를 이어 GE의 수장으로 선출된 이멜트의 취임 일성은 ‘성장’이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추앙 받는 GE도 주저하지 않고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성장’을 내세운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성장이란 기업 활동의 지속을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성장을 이루어야만 기업이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30년을 넘기지 못하고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 상장 기업의 평균 연령은 약 35년이고, 80년 이상의 장수 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 서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1955년에 포춘 500대 기업에 들었던 회사들 중에 1994년까지 무려 전체의 68%인 340개 기업이 사라졌다. 이러한 사실들은 지속적인 성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으로 해당 산업의 성장을 꼽는다. 대표적으로 마이클 포터를 비롯한 경쟁 전략가들은 이러한 산업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기업을 바라 보았다. 즉, 성장 산업을 찾아 재빠르게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경쟁자들이 손쉽게 모방할 수 없도록 진입 장벽을 쌓는 것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제조업은 그 동안 국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자 한국 기업들의 성장 원천이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회복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 휴대폰, 가전 등 주력 제조업의 빠른 성장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성숙으로 인한 내수 시장의 포화, 중국의 급격한 성장과 공급과잉, 글로벌 경쟁의 격화 등으로 인해 한국 제조업이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기업경영성과분석 자료를 통해 2000년에서 2005년간의 산업 총 매출을 분석한 결과 산업 세분류 기준(SIC 산업코드 세자리)으로 제조업 51개 산업군 중 약 39.2%인 20개 산업군이 연평균 명목 GDP 성장률(’00~’05 GDP CAGR= 6.98%)을 밑도는 산업 성장률을 보였다.
과거와 같이 한국 기업의 발전을 이끌었던 산업 자체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저성장 산업을 극복한 고성과 기업들
이에 저성장 산업에 속해 있으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산업의 성장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해보고자 한다.
국내 산업 환경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외감 법인 이상 15,054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했으며, 산업 특유의 경영 환경 요인을 제어할 목적으로 표준산업분류기준으로 세분류 산업군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 기간은 국내 표준산업분류기준의 최근 개정 시점이 1999년이라는 점과 IMF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2000년부터 2005년까지의 6년간을 설정하였다.
저성장 산업은 한국은행의 기업경영성과분석 자료의 산업별 매출 증가율과 동기간 국내 명목 GDP 증가율을 비교하여 선정했다. 이를 통해 산업 전체의 매출 증가율이 명목 GDP 증가율보다 낮은 저성장 산업들을 추려냈다.
또한 저성장 산업 내 고성과 기업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산업의 평균 매출 성장률과 평균 영업이익률을 도출한 후 해당 기업의 매출 증가율과 평균 영업이익률을 비교했다. 이를 통해 외형과 내실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수익을 동반한 성장(Profitable Growth)을 달성한 기업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 기업들 중 기업 벤치마킹 대상으로 적합한 규모를 반영하기 위해 2005년 기준 자산 총계 및 매출 총액이 1,000억 원 이하인 기업들을 제외했으며, 2005년 영업이익률이 (-)인 기업들과 최근 년도에 매출의 역신장 추세가 뚜렷한 기업들을 제외했다. 마지막으로 고성과의 객관성을 갖추기 위해 동기간 제조업 전체 평균 영업이익률인 6.7%보다 성과가 낮은 기업들을 탈락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내 저성장 산업 환경을 극복한 21개 기업을 도출했다(<표 1> 참조). 어떻게 그들은 저성장 환경을 극복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관심은 과연 21개 대상 기업들이 어떻게 어려운 산업 환경을 극복하고 고성과를 낼 수 있었는가로 모아진다. ● 게임의 룰을 바꾸어 시장을 선도한다.
산업의 지배자는 경쟁의 법칙을 깨는 경쟁 법칙 창조자(Game Rule Maker)였다. 경쟁 법칙 창조자는 기존의 경쟁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경쟁법칙을 정립, 경쟁자가 모방하기 힘든 근원적 경쟁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는 저성장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산업이 성숙해감에 따라 성장은 정체되고 모두가 다 아는 게임룰에 집중한다. 그러나 고성과 기업들은 발상을 전환함으로써 경쟁법칙의 창조자가 되었고 시장을 선도했다.
「한국야쿠르트」의 사례를 보자. 현재 한국야쿠르트는 국내 발효유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1971년 유산균 발효유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야쿠르트’를 시작으로 발효유 시장을 개척해온 이 회사가 지금까지 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 브랜드인 윌과 쿠퍼스의 성공 덕분이다.
유산균 발효유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처럼 한국야쿠르트는 윌과 쿠퍼스를 통해 장 건강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경쟁 법칙을 무너뜨렸다. 최초로 위, 간 등 유산균 음료의 부위별 기능성을 강조함으로써 발효유 업계를 기능성 음료 시장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국내 커피 시장의 부동의 1위 기업 「동서식품」 역시 끊임없는 발상의 전환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시제품 생산형 파일러트 플랜트(Pilot Plant)를 갖춘 동서기술연구소를 운영해온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하여 커피믹스 시장을 열었으며, 차가운 물에도 쉽게 용해되는 커피 및 우유 첨가제를 개발하여 인스턴트 아이스 음료 시장을 개척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베스킨라빈스의 비알코리아」도 끊임없는 발상 전환을 시도했다.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에 ‘골라먹는 재미’라는 다양성 제공을 시작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 시장 창출, 닉네임 마케팅을 통한 아이스크림의 컨셉화를 주도함으로써 브랜드 최초 상기도 86%라는 높은 시장 지위를 같게 된 것이다. ● 전략적 의지를 가지고 과감히 미래에 투자한다
성숙 산업의 기업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보수적이다라는 것이다. 산업의 역사와 함께 기업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새로운 신규 사업 투자가 상대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고성과 기업들은 벤처 기업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타이어 전문 회사로 우뚝 선 「한국타이어」의 성공 사례를 보자. 국내 타이어 시장이 성장 한계에 직면한 1998년 봄, 외환위기 여파로 경쟁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는 그 시기에 한국타이어는 중국에 3,000억 원의 투자집행을 결의했다.
자금 상황이 열악하고 해외 진출 경험도 부족한 시기였지만, 한국타이어는 신성장 동력 발굴의 전략적 의지를 갖고 뚝심 있게 추진했다. 중국 시장의 성공을 위해 노후화된 영등포, 인천 공장을 폐쇄하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필사적으로 현지 시장의 거래선을 발굴 했다.
결국 한국타이어는 중국 진출 4년 만에 중국 내 승용차 타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중국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4대 중 한대는 한국타이어 제품일 정도의 큰 성공이었다. 이러한 성공의 원천은 한 박자 빠른 과감한 투자결정을 내려 현지 선발업체로서 프리미엄을 확보한 데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류 기업인 「세정」 역시 전략적 의지에 기반한 과감한 투자로 성공을 거둔 사례다. 외환위기 시절 내수 부진과 자금난이 겹치면서 유명 브랜드들이 가두 매장의 철수를 추진하자 세정은 가두 매장의 시장성을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대리점주들을 끌어 모았다. 1998년부터 3년 동안 현재의 30% 수준인 140여 개의 신규 매장을 열었고 이러한 결정이 현재의 성장을 견인한 것이다.
2008년에 창립 50주년을 맞는 「KCC」 역시 탈(脫) 건축자재 기업을 목표로 거대 장치 산업인 실리콘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10여 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세계에서 5번째로 실리콘 생산 기술을 확보한 KCC는 2004년 첫 실리콘 생산을 시작했다. 향후 KCC는 2012년까지 20만 톤 생산 체제 구축을 목표로 1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 적극적으로 외부의 성장 동력을 흡수한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성장 둔화는 산업의 성장 주기에서 성숙단계에 진입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숙 산업에서는 소위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을 통해 규모의 경제 달성 및 목표 시장 확대를 추진한다.
실례로 산업 성장률이 0~4%대인 미국과 일본의 건축자재 산업에서는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확보 및 목표 시장 확대가 일반화 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성숙산업인 철강업체들도 생존을 위해 과감한 M&A로 덩치불리기를 하고 있다. 철강업계 1위인 미탈스틸은 선두를 확고히 하기 위해 올 상반기 2위 업체인 아르셀로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건자재 전문기업 「유진기업」은 이순산업㈜과 이순 등을 합병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레미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를 통해 원재료 구매력, 고객 대응력이 강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수익성 개선을 이루었다.
같은 건자재 전문 기업인 「아주산업」은 인수 합병을 통해 새로운 신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대우자동차판매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동차 관련 사업을 익힌 후 KRX(AVIS의 한국 법인), 대우캐피탈을 인수, 종합 자동차 서비스 업체로 변신을 이루었다. ● 새로운 성장 시장을 찾아 나선다
국내 시장의 수요가 정체되고, 공급 과잉이 심해짐에 따라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시장을 찾아야 했다. 이에 국내 저성장 산업을 극복한 기업들은 남들보다 빨리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했으며, 성장세가 높은 신흥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해외 매출 신장률이 해마다 50% 이상을 달성하고 있는 롯데제과를 보자. 「롯데제과」는 중국이 개방되기 이전인 1989년부터 싱가포르, 홍콩을 통한 간접 수출을 시도했고, 1992년 베이징 사무소 설치, 1994년에는 중국현지 합작법인 설립 했으며, 금호식품유한공사 등 현지 업체를 인수,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그 결과 중국 껌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성공은 적극적인 인도 시장 공략으로도 이어졌다. 롯데제과는 인도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패리스제과 주식회사를 인수했으며, 현지 유통망 확충에 투자를 증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도 시장에서 한국 소비재 기업 중 최초로 연간 40~50% 성장을 달성했다.
같은 식품업계인 「농심」 역시 10년 전인 1996년부터 중국 상해에 현지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중국 시장 공략으로 매출 성장을 이끌고 있다. ● 차별화된 조직 역량을 만든다
남들보다 우수한 성과를 달성하는 기업들은 다른 경쟁자들과는 차별화된 핵심 자산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다른 기업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특유의 역량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차별화된 생산성을 발휘한다. 이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산업 내에서 자사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새로운 제품의 개발과 확산에 강력한 힘이 된다.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핵심요인이 되는 것이다.
국내 발효유 업계의 강자 「한국야쿠르트」를 보자. 내놓는 음료마다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회사의 성공 원천 중 하나는 바로 방문 판매조직, ‘야쿠르트 아줌마’들이다. 전국 읍 단위 이상의 지역을 12,000개로 등분해 관리하는 한국야쿠르트의 방문 판매 조직은 1971년부터 운영된 한국야쿠르트의 중심축이다. 1974년부터 상조회를 운영하여 판매원의 복지를 증진시켰고, 일정한 수입 보장, 장기 근속 포상 등의 장점은 판매원의 이직을 줄였다. 결과적으로 한국야쿠르트의 판매조직은 수 십 년의 베테랑 경력자들로 구성된 강력한 조직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한국야쿠르트의 신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확산 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유한킴벌리」 역시 강력한 조직 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배양한 기업이다. 8개 사업분야에서 모두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강력한 무기는 인적 자산과 운영시스템이다. 다른 기업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평생학습제도와 4조 2교대 시스템, 즉 4일 근무, 4일 휴식 시스템은 생산 인력의 지식 근로자화를 유도, 생산성 향상과 인적 자원 역량 강화를 이루어냈다.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초과 근무에 매달리던 기존의 관행을 없앤 4조 2교대 시스템은 노사의 오랜 신뢰 관계 형성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쉽게 정착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더구나 평생학습제도는 유한킴벌리의 교육비 지출을 50% 이상 증가시켰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이 시스템은 생산성 향상과 아이디어 증가, 제품 개선 등의 효과로 나타나 유한킴벌리의 시장 지배력 강화에 큰 역할을 했다. 성장은 새로움에서 출발한다.
기업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성숙산업이나 사양산업은 없다. 개별 기업의 전략 활동, 조직 역량에 의해 산업 자체의 저성장성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저성장 산업을 극복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성장에 대한 갈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 과감한 미래 준비는 저성장에 직면한 우리 기업들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기존 사업의 틀을 벗어난 역발상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업만이 성장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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