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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스승에 길을 묻다.

by 홍반장 2007. 4. 15.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스승 허영 명지대 교수, 제자 정종섭 서울대 법대교수 전문
**조선일보 화요연제, 2004.11.23 게재된 입니다.
 
허영(許營·68) 명지대 법학과 초빙교수와 정종섭(鄭宗燮·47) 서울대 법대 교수는 정 교수가 1981년 ‘헌법의 정당성’ 문제를 연구하겠다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교수를 찾아 허 교수가 재직하던 경희대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그 후 허 교수가 연세대로 학교를 옮기자 정 교수도 박사과정은 연세대로 진학해 학위를 받았다.


▲ 허영 교수(오른쪽)는“엄격하게 제자를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고, 정종섭 교수는“선생님은 책을 내실 때 제자들에게 단 한 번도 심부름을 시킨 적이 없으셨지요”라고 화답했다./ 이진한기자 (블로그)magnum91.chosun.com

허 교수는 경희대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의 본대학과 바이로이트대학 교수를 거쳐 경희대, 연세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고시헌법학에 머물러 있던 국내 헌법학을 ‘학문이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첫 세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사법고시에 합격,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초창기 헌법재판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건국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에서 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종섭=저는 유신시대에 법대를 다니면서 당시 유신(維新)헌법은 전혀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운동에도 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당한 헌법이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밝혀보고자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80년대 초반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제가 헌법의 정당성에 대한 석사논문을 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 정년퇴임을 하셨고 저는 대학교단에 서있는데, 60년대 이후 지난 날의 일들에 대해 헌법학자로서의 감회가 어떠하신지요?
허영=70년대 유신시대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불행했던 시기였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는 관계 없이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이 영구집권을 하려고 만든 일종의 '장식적 헌법'에 의한 강권통치가 행해졌던 시기였습니다. 72년 3월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대학 강단에서 헌법학을 강의해야 했던 나로서는 회의와 절망과 분노와 좌절의 시기였습니다. 내가 공부한 헌법은 말할 것도 없고 5년간 유학생활을 하던 독일의 헌정 모습과 우리 유신통치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헌법이 국민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 국민의 생활규범으로 작용하면서 헌법적 가치에 따라 사회가 조용히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모범적인 헌법국가 독일에서 헌법학을 공부하고 자유민주적인 헌정질서가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체험하고 귀국한 나로서는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72년 긴급조치가 단행되었는데 그 당시 천주교에서 발간하던 월간 '창조'지에 기고한 비판적인 글이 사전 검열에 걸려 정보부로부터 심한 곤욕을 겪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추억입니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75년 다시 독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학자로서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종섭=선생님께서는 당시 유신헌법 정당화에 동원된 독일의 칼 슈미트의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시고 그 대안을 통합이론에서 찾고자 하셨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하셨다고 보시는지요? 물론 당시의 상황에서 온갖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시고 몸은 던지신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합니다만, 객관적인 이론적 성과면에서 어떻게 자평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통합이론도 너무 우향우하면 자유가 억제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점에서는 선생님과 좀 다른 길로 갔습니다만. 스승과 제자의 차이라 할까요.
선생님께서도 아시듯이, 저는 비판법학과 법사회학, 실천법학과 참여민주주의 등에서 보다 넓은 지평을 찾으려고 했지요. 아마 이 점에 대해서는 선생님께서 제자인 저를 마땅하지 않게 생각하시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도 있고요.
허영=유신통치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고 동원된 헌법학자들 중에는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헌법철학을 신봉한 분도 있었고 법실증주의 헌법철학의 추종자도 있었습니다. 두 헌법이론은 국민의 이름을 팔아 행하는 힘의 강권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악용될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독일의 히틀러도 칼 슈미트를 동원했던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시대나 우리 유신시대를 통해서 경험했던 것처럼 두 헌법이론이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악용될 소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헌법학자로서 그 이론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그런 방향으로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내가 기본으로 삼고 있는 동화적 통합이론도 물론 완벽한 헌법이론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나름으로 통합이론을 보완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내가 주장하는 통합이론은 아무리 비틀어서 적용해도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변질될 수는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공감적 가치와 생활감각 내지 시대정신에 따른 사회통합을 헌법의 목표로 설정하는 통합이론에서는 처음부터 '장식적 헌법'이나 '명목적 헌법'이 발을 붙일 공간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교수가 지향하는 비판법학, 실천법학, 참여민주주의 등은 바로 통합의 과정과 절차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을 짚으려는 주제들이기 때문에 통합이론과는 불가분의 이념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판'과 '실천'은 규범의 학문에서는 너무나도 당위적인 것입니다. 참여민주주의도 투입과 산출의 합리적인 교차기능을 통해 정책의 수용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라면 가치 지향적인 사회통합의 한 수단에 불과 합니다. 또 통합이론은 당연히 법사회학의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정교수도 통합이론의 큰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종섭=유신 이후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이를 극복하고자 한 헌법학과 정치학에서의 많은 노력들은 독일 나치통치를 정당화한 칼 슈미트의 이론을 국내에서 일소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80년대에는 좌파급진운동세력에서 칼 슈미트의 민주주의이론, 즉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지요. 급진좌파진영에서 극우이론을 혁명이론으로 둔갑시킨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것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는 절망감도 느꼈습니다. 독재와 권위주의에서의 탈출이 곧 자유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지요. 즉 민주주의라는 구호아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전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의 제도화에 전력 투구를 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구호로만 난무할 때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었지요. 흔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야기 합니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독재와 권위주의의 극복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고,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의 극복이 바로 시장경제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지요, 그러다 보니, 그 체화 또는 내화 과정과 공고화과정이 생략되었고, 지금의 혼란은 여기에서 비롯한다고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유신과 권위주의 통치에서 92년이후 민주화로 이행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의 상황전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허영= 기본적으로는 우리 헌법의 기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그리고 법치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비록 다의적인 개념이기는 해도 그 본질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대의기관의 정책결정 기능이 얼마나 국민의 정책적인 공감대와 일치하느냐에 따라 정치적인 평화와 사회안정이 좌우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현실은 문민정부에 들어 와서도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수렴하기보다는 다수당 내지는 여당의 정치적인 독선이 우선적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제대로 된 대의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결원칙을 민주주의의 본질로 오해하는 것도 민주정치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이유의 하나입니다. 한 예로 국회에서 야당과 절충과 타협을 하기보다 수로 밀어 붙이려는 의식이 지배하는 것도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인 자유 평등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형식원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다수결로 하더라도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실현에 역행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타협과 절충을 위한 토론과정을 생략한 채 수로 밀어 붙이는 다수결은 다수의 독재에 불과 합니다. 칼 슈미트의 헌법이론이 배척되는 이유도 다수의 독재를 국민의 이름으로 미화하고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법은 언제나 정치의 시녀역할만 했기 때문에 법이 정치를 주도하고 지배하는 진정한 법치주의가 실현된 경우가 아직 한번도 없었습니다.

정종섭=한국에서의 기적을 말할 때, 누구나 박정희 정부에서의 ‘한강의 기적’을 듭니다. 저는 박정희 이후 대통령들의 실패를 보면서 박정희시대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유신체제를 몸으로 겪은 저로서는 아직은 많은 점에서 유보적입니다. 아무튼 이런 기적 이외에 다른 하나의 기적을 들라면 ‘헌법재판의 기적’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국제학회에서도 완전히 인정받는 부분이지요. 국제학회에서 이를 발표할 때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지요.
1987년 헌법에서 아시아 최초로 헌법재판소를 도입하고, 본격적인 헌법재판을 했는데, 15여년 동안 엄청난 업적을 쌓은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허영=우리 헌정사를 통해서 제도적으로 성공한 것이 있다면 바로 지금의 헌법재판제도입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지난 16년 동안 우리 헌법을 규범적인 헌법으로 실현하는데 매우 큰 공헌을 했습니다. 200개가 넘는 기본권 침해 법률을 위헌결정해서 무효화 시킨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우리 헌법재판제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앞으로도 우리 헌법재판제도가 더욱 완벽한 권력통제장치로 기능하고 헌법재판소가 명실상부한 헌법수호기관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취약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정종섭=탄핵재판이나 수도이전법률에 대한 재판을 겪으면서 국민들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는데, 국민들이 헌법적 쟁점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는 것은 한국의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 좋다고 봅니다. 다만, 헌법재판은 본질적으로 항상 법과 정치의 긴장관계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바람잘 날이 없지요. 그런데 요즈음 각기 자기이해관계에 따라 헌법재판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데 비평은 좋지만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는 불순하다고 봅니다. 헌법재판이 권위와 설득력을 가지는데는 재판의 공정성, 논증의 설득력 그리고 정당성인데, 정당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는 헌법재판의 정당성은 입헌적 정당성(constitutional legitimacy)과 민주적 정당성(democratic legitimacy)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민주적 정당성에서는 취약점이 있다고 봅니다만.
허영=최근 일부 정치세력이나 사회단체가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퍼 붓는 저주와 매도는 우리 헌정질서의 뿌리를 흔드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정치 행태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권위를 부인하는 것은 이 나라를 또 다시 통제 없는
독재정치체제로 되돌리겠다는 발상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존립근거는 바로
국회와 정부 그리고 법원 등의 위헌적인 권력행사를 막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굳은 의지로 헌법이 부여한 책임과 사명을 완수할 때 비로소 우리의 헌정질서는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숙명적으로 정치권과는 긴장관계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수록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결정을 할 때 정치한 논증을 통해서 결정의 법리적인 타당성과 정치적인 설득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정교수 말 대로 헌법재판소의 구성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 합니다. 헌법기관의 권력은 헌법에 근거를 두지만, 민주적 정당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권력행사가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정종섭=헌법재판은 본질적으로 권력을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며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때문에 앞으로 끊임없이 국회의 입법권, 대통령의 권력, 사법권 등과 ‘권력과의 불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국민들은 헌법재판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허영=헌법재판소가 입법, 행정 사법권과 밀착하게 된다면 권력통제의 고유한 헌법적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그런 의미에서 고독한 제4의 국가 기관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기본권 보호의 마지막 보루가 헌법재판소라는 인식을 가지고 헌법재판소 활동을 격려하고 성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길입니다.

정종섭=이번에 수도이전법률에 대한 재판에서 ‘관습헌법’이라는 것이 우리 헌법질서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되는 국면을 맞이하였습니다. 저는 실정법의 나라에서는 가능한 한 실정법에 충실하여야 하며, 거의 대부분은 헌법의 해석을 통하여 해결된다고 봅니다. 인간의 주관성과 자의로부터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보다 깊이 재검토하고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법의 구조속에서 관습헌법의 등장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허영=헌법재판소가 수도이전특별법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불문헌법의 대명사로 통하는 '관습헌법'을 핵심적인 논거로 제시한 것은 개념사용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관습헌법이라는 불문헌법의 개념보다는 성문헌법의 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헌법적 관행 내지 헌법관습법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논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헌법재판소도 그런 취지가 아니었는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즉 한 나라의 수도, 국기, 국가, 국어 등은 그 나라 국민통합의 상징성을 나타내는 헌법적인 비중을 가지는 사항이기 때문에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세계 80여개 국가는 이들 사항을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서는 헌법개정으로만 고칠 수 있는 사항들입니다. 우리 나라는 비록 이들 사항을 헌법에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적인 비중을 가지는 헌법적인 관행으로 굳어진 사항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헌법적인 관행으로 확립된 국민통합의 상징인 우리의 수도이전문제는 반드시 헌법개정에 준하는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선거 정략적인 차원에서 단순히 특별법을 만들어 법률로 수도를 이전하려고 하는 것은 헌법적인 관행을 침해하는 일로서 국민통합을 해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논증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성문헌법을 가지는 미국에도 헌법적 관행 내지는 헌법관습법은 존재할 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 헌법적 관행을 단순한 법률로 바꾸려는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확보하고 있는 법률의 위헌심사권은 헌법의 명문규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1804년 이래 확립된 헌법적 관행 내지는 헌법관습법 입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것은 불문헌법인 관습헌법이 아니라 성문헌법을 전제로 한 헌법적 관행 내지 헌법관습법이라고 이해한다면 논란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종섭=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저는 역설적이게도 요즘이 유신시대나 지난날의 권위주의시대보다 지식인들이 줄어들었고, 성찰적 지성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봅니다. 사회의 담론 구조를 ‘적과 동지’의 이분법과 ‘선과 악’의 낙인찍기로 만들어 나가면서 지식인까지도 어느 한편에 서서 파당적으로 되어 버린, ‘지성의 실패’가 초래되었다고 봅니다. 사회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것과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낙인을 찍어 죄악시하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본질은 파시즘이고 전체주의이지요. 이는 반지성이지요. 이러한 반지성으로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작금의 우리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허영=심화되고 있는 우리의 분파적 사회구조는 근본적으로 지식인이나 지성인의 책임이 아니라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의정치의 기본이념을 망각하고 대통령이 지지세력만의 대통령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절대적인 나라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분파적일 때 사회는 당연히 분열적 구조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와서 이런 사회분열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정종섭=저는 성찰적 지성을,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스스로 소외시키는 소외정신, 그리고 어떤 당파성에서도 거리를 두는 지성적 고독함이라고 봅니다. 이를 유지할 때만 진정한 지식인 또는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이탈할 때는 이미 행동가, 정치인, 분파적인 나팔수에 지나지 않지요. 지식인이 자기 청중을 모으고 이를 동원ㆍ관리하고, 그 가운데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만족한다면 성찰적 지식인을 나오지 않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저와 같은 생각을 무슨 한가로운 생각이냐고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저는 힘이 들고 시간이 들더라도 이러한 성찰적 지식인이 많이 나와야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믿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년이후에 대사회적 발언을 적극 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허영=지식인이건 아니건 누구라도 민주시민이라면 당연히 권력에 대해서 비판적인 복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의사표현을 통해서 input (투입)을 꾸준히 해야 민주정치가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주관에서 완전히 탈피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투입은 다원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원적으로 투입된 국민의사를 평가해서 취사선택하고 정책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통치자의 몫입니다. 정치인은 그 능력에 따라 정치역량을 평가 받게 되겠지요

정종섭=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아마도 헌법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헌법은 권력을 창출한 모체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권력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규범이기 때문이지요. 국민들도 때로는 자기이익 앞에서는 자기 손으로 만든 헌법을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입헌주의는 공허한 입발림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국민 헌법읽기를 주창하고 있습니다. 헌법을 한번씩만 읽어보면 권력을 사람들도 겸허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너무 낙관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이 길이 천천히 가지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9차례나 헌법을 개정하는 역사를 살아왔습니다만, 헌법이 우리의 삶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며 왜 중요한지를 체화하지 못하고 있지요. 우리의 삶에서 헌법이 무슨 의미를 가지며 왜 중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허영=헌법은 사회통합의 기초가 되는 공감적인 가치를 집약해 놓은 국가의 기본법이기 때문에 국민의 생활규범으로 작용해서 국민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이 헌법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일상생활에서 헌법적 가치를 자신의 가치지표로 삼아 실천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

정종섭=정치권에서는 상황에 따라 정치적 계산을 해보면서 개헌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이 비일비재한데, 저는 아예 국회에 범국민적 국가적 차원에서 중립적인 헌법연구위원회를 설치하여 전문가들이 2-3년정도 자료를 모으고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진정 21세기 한국에 필요한 헌법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갑자기 개헌문제를 띄워 올리거나 대선쟁점으로 삼아 논의가 왜곡되는 것을 막는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개헌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허영=좋은 생각입니다. 헌법은 함부로 손대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헌법은 가장 강한 효력을 가지는 규범이기 때문에 침해의 유혹도 제일 강하게 받는 규범이기도 합니다. 헌법개정을 지나치게 어렵게 해 놓으면 오히려 헌법이 더 쉽게 침해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도 체계정당성의 관점에서 보완하고 고쳐야 할 사항이 적지 않습니다. 정치적 정파적인 목적의 개헌에는 전혀 동의할 수도 없고 결연히 막아야 하지만, 헌법규범의 완결성을 높여 사회통합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한 개헌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반드시 헌법 개정의 목적이 아니라도 국회에 헌법전문가로 구성된 헌법평가팀을 두고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상설적으로 헌법적인 차원의 검토와 평가를 하도록 맡김으로써 위헌적인 입법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국회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정종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