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1·11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서울·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사진은 1·11 대책 이후 호가 하락이 두드러지고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 인근 주공아파트 단지.
ⓒ2006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부의 '1·11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서울·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특히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인상에 담보대출 상환 압력까지 겹치면서 강남권과 경기 과천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투기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을 기존 대출까지 1인 1건으로 제한하는 강공책을 내놓으면서 보유 효과가 적은 물건은 털어내자는 다주택자들이 차츰 늘고 있는 것.
시장에서는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모두 꺼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갈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그동안 정부가 강력한 대출 규제책을 내놓아도 부동산 호재 이슈가 부각되면 금세 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섰다"며 "이번 대책도 효과가 얼마나 갈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장 목소리 ①]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1ㆍ11 대책' 발표 뒤인 지난 13일. 서울 강남역 삼호아파트 주변에 자리잡은 시티랜드부동산 안시찬 사장이 <오마이뉴스>에 전화를 걸어왔다.
"예전에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을 때와 지금은 분명 상황이 다르다"며 "정부가 대출 규제 강도를 점점 강화하고 재건축 길은 막아 놓으면서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게 안 사장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급등했던 지역에서 먼저 1·11 대책 여파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 부동산114의 지난 주말 집값 조사를 살펴보면, 그동안 아파트값 급등을 주도해 온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이 뚜렷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목동을 중심으로 한 양천구가 0.03% 하락했으며, 경기 평촌도 0.12% 떨어졌다. 이들 지역은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 만에 집값이 내림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전국적인 집값 폭등을 불러온 과천시도 내림세가 계속되고 있다. 11억원 선에서 거래되던 과천 주공2단지 18평형은 최근 9억6000만원까지 호가가 내려갔다. 또 9억원을 호가하던 16평형은 8억원 선에서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매물도 단지 전체를 통틀어 평소 6~7건이던 것이 현재 14건으로 늘었다.
과천 주공단지 인근 오렌지컨설팅 박강호 대표는 "이번 정부 대책 발표 후 물건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매수자들의 문의가 쏙 들어간 상태여서 매물이 쌓이다보면 가격 하락 압박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 개포 주공 단지도 비슷한 모습이다. 1·11 대책 발표 직후인 지난주 말부터 급매물 상담이 쏟아지고 있다. 개포 주공 5단지 인근의 우진공인중개사 고재영 대표는 "주공 5단지 33평형의 경우 이달 초만 해도 13억원 선이었으나 1·11 대책이 나오자마자 11억원 대 매물이 나와 있다"며 "이 외에도 지난주 말부터 급매물이 하나둘 나오면서 아파트값이 전반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는 13억5000만원이던 34평이 이달 들어 12억7000만원까지 떨어진 뒤 최근 다시 1000만원이 내렸다. 당장 매수자가 나타날 경우 거래가 가능한 매물도 평소 5~6건에서 현재 16건으로 늘었다.
[현장 목소리 ②] 당황하는 다주택자들
▲ 지난해 5월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단지. 일부 지역에서 재건축이 진행중이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에 따라 이번 정부 대책 발표 뒤 다주택자들이 어느 정도 물건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금융감독당국이 투기지역내 아파트 담보대출에 대해 1인 1건으로 제한하면서 다주택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당초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대출을 늘려 집을 구입한 다주택자들이 주택시장이 하향 안정될 조짐을 보이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무엇보다 당국의 대출 규제 분위기가 확실해지면서 가격을 얼마나 낮춰야 원하는 시기에 팔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이 같은 조바심이 곧 급매물 속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시찬 대표는 "그동안 다주택자들은 저금리 기조 아래 전세 보증금과 담보대출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집을 늘려왔다"며 "그러나 올해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1건만 남겨놓고 만기연장이 불가능하게 된 만큼 아주 현금이 많은 사람을 제외하고 집 한 채를 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출만기가 돌아오는 사람은 대출금 상환 압력 때문에 현금보유가 충분하지 않는 이상 집을 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1년 이내에 대출만기가 돌아와 담보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주택이 5만~6만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 대표는 "그 동안 집값 상승의 진원지로 손꼽혀 온 이른바 '강남 4구'와 경기 과천에서도 더이상 집부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던 시대는 지났다"고 밝혔다.
[현장 목소리 ③] "대선까지 버텨보자"
일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이번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가 '세대별 규제'가 아닌 '1인 1건 규제'라는 점에서 그 실효성에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주택담보대출을 1인 1건으로 제한할 경우 한 가족 당 여러 건 대출이 가능한 만큼 편법증여를 통해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피해갈 수 있기기 때문이다.
안시찬 대표는 "정부가 1인 1건으로 담보대출을 규제하다보니 다주택자들 중에서도 다소 여유가 생긴 게 사실"이라며 "일단 상승 불씨는 분명하게 꺼졌지만 실제 매물이 쏟아져 집값 안정의 효과를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에서는 일부 다주택자들 중심으로 지금 당장 처분하기 보다는 부인 명의 또는 자식 명의로 이전해 대출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다"며 "세대별로 규제를 하면 편법증여가 어려워지는 만큼 당장 물건이 더 쏟아져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1인 1건' 규제가 아닌 '세대별 규제' 방안을 적극 검토했지만 정부를 중심으로 부동산시장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결국 '1인 1건'으로 후퇴했다.
여기에 올해 말 대선 이후 정책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다주택자들이 '그때까지 기다려보자'며 '버티기'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고재영 대표는 "당장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1년간의 유예기간(2008년 1월15일)이 있는 만큼 일단 대선 후까지 지켜보겠다는 다주택자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