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경일(54)씨는 국민연금으로 한 달에 13만3000원을 낸다. 그는 한때 연금을 내지 않았다. 연금이 고갈되고 급여액도 줄어든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타고다니던 자동차를 차압당하기도 했다. 그런 그도 이제는 빠지지 않고 국민연금을 내고 있다. 보험료와 급여를 조정해 연금이 펑크나지 않게 만들 것이고, 급여가 줄어도 내는 돈보다 여전히 더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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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개혁안은 보험료를 소득의 9%에서 2018년까지 12.9%로 점진적으로 올리면서 받는 연금을 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추고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도 5년 뒤로 미루고 있다.
일단 큰불은 끈 셈이다. 그렇다고 이 개혁안이 말끔한 것은 아니다. 적자가 발생하는 시점이 2036년에서 2057년께로 미뤄졌을 뿐이다. 지속 가능한 연금제도로 만들려면 재정을 탄탄하게 하는 노력이 늘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이씨가 연금을 꼬박꼬박 낸다고 해서 연금에 대해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부은 보험료가 다른 사람에게로 새 나간다'거나 '연금의 수익성이 낮아 연금 붓는 것보다 차라리 적금 붓는 게 낫겠다'는 불만은 여전하다. 재정 고갈의 불안은 해소됐지만 이런 불만들 때문에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아예 연금 가입을 피하는 사람이 많다. 지역 가입 대상자 10명 중 6명은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다. 이런 연금의 '자발적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금 운용의 수익성을 올려야 한다.
2004년 말 현재 국민연금 기금 금융 자산의 90% 이상이 채권에 집중돼 있다. 연금관리공단 입장에선 안정성을 중시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수익률이 낮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 기금이 공공자산으로 인식돼 때로는 사회기반시설 등 공공.복지정책 추진(2002년 연금의 3분의 1)에 쓰여 수익성이 더 떨어지기도 한다.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라면 장기적으로 채권보다 주식의 수익률이 높다. 연금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케 해 수익성도 올리고 잠자고 있는 엄청난 기금이 증시와 경제 활성화에 기여토록 하자.
삼성경제연구소 강성원 수석연구원은 "국민연금 중 일부(2% 정도)라도 개인이 투자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 저축 계좌로 삼자"고 제안한다. 연금기금운용본부가 운용 실적이 좋고 믿을 만한 금융사들을 엄선해 놓으면 각 가입자가 운용사와 투자 상품을 선택하고, 관리공단은 이들을 모아 금융회사에 전달하는 식의 제도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점차 늘려가도 된다. 소득의 10%를 연금보험료로 내는 칠레는 그 전부를 개인 계좌로 관리한다.
수익보다 안정성이 더 중요한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는 개인 계좌분을 지금처럼 확정지급형 국민연금에 남든가 또는 물가보다 높은 이자가 붙는 국채에 투자하는 선택권을 주면 된다. 한마디로 개인의 선택 폭을 넓힘으로써 연금의 수익성을 높여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는 얘기다.
나머지 국민연금은 소득과 비례하는 지금의 급여제도에 그대로 두고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계속 안전자산에 운용토록 하면 될 것이다. 국민연금은 부담이 아니라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가장 안정적인 투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게 내고 많이 받겠다'보다 '제대로 내고 제대로 받는다'는 생각이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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