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말실수로 유명한 부시 대통령이 2002년에 어려움에 빠진 프랑스 경제를 두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프랑스 자본주의가 활력을 잃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이 그만 “프랑스어에는 ‘entrepreneur'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어서...”라고 말했다가 또 한번 구설수에 오른 바 있었다. 이유인즉슨, 사실은 ‘entrepreneur’라는 말이 원래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그가 깜빡 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단어의 원래 의미를 직역하면 “착수하는 사람” 또는 “행동에 옮기는 사람” 쯤에 해당한다. 영영 사전의 정의나 영한사전의 뜻풀이를 봐도 “기업가”라는 말 이상의 번역어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entrepreneurship (기업가 정신)”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businessman’ 등처럼 유사한 뜻을 가진 다른 단어에 비해, ‘entrepreneur’는 기업가 중에서도 창의성과 모험정신을 갖춘 남다른 사람이라는 뭔가 범상치 않은 뉘앙스를 풍긴다.
이처럼 ‘entrepreneur'의 애매한 어원(語原) 또는 의미만큼이나, 기업가들이 실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확실한 규정이 내려져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불어의 의미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려면 그리고 특별히 그 일이 기업을 시작하는 일이라면 우선 진취적 정신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시장의 틈새를 파악할 수 있는 안목, 또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변 환경을 예의주시할 줄 아는 능력도 기업가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entrepreneur (기업가)’의 역할은 학문의 영역에서는 늘 찬밥 대접을 받아왔다. 기업과 시장에 대한 미시경제학적 연구에서 항상 최고의 자리는 “가격”이 차지해왔다.
기존의 설명에 따르면, 여러 생산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업가의 판단 기준은 그 당시의 임금, 금리 등의 가격 조건이 되기 때문에 임금이 낮을 때는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생산 방법을 선택하고, 반면에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질 때는 상대적으로 자본집약적인 생산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설명 어디에도 생산 방법 자체를 새로이 발명하거나 혁신해내는 기업가 정신에 대한 고려는 들어갈 여지가 없다.
마찬가지로 생산량의 결정요소 역시 시장에서의 제품의 가격일 뿐이지, 아무도 생각해낸 적 없는 기발한 생산방법의 도입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옵션은 웬만한 경제학 교과서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국경제학회(American Economics Association)가 최근 개최한 연례총회에서 무려 세 세션을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할애함으로써 학계 안팎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사실 경제학계에서도 기업가의 역할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없지 않다.
우선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와 같은 학자는 경제이론의 성역으로 취급 받고 있는 '가격 메커니즘의 신화'를 끌어내리기 위해 학문적 열정을 바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현실적으로 기업에게 가장 경쟁력 있는 무기는 낮은 가격이 아니라 신상품과 신 기법이고, 이처럼 새로운 것의 원동력인 혁신이야말로 기업의 생존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여겨졌다.
슘페터의 말대로 혁신이 정말 기업의 흥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요소라고 가정했을 때, 기업의 입장에서는 혁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투자를 강조하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의 가정대로라면, R&D 부서를 강화하고 더 많은 예산을 신제품과 신 프로세스 창출을 위해 할당함으로써 “발명의 일상화”를 이루어내는 기업만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체가 잡히지 않던 기업가정신을 이처럼 ‘혁신’ 그리고 그에 따른 ‘발명’이라는 “대리개념(proxy)"을 내세워 정의할 수 있다면, 이는 경제학의 입장에서도 ‘기업가정신’에 대한 좀더 체계적인 연구를 가능케 하는 좋은 소식으로 들릴 법하다. 실제 죠셉 슘페터의 뒤를 이어 경제 이론에서 기업가정신과 혁신이 차지하는 위상을 높이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윌리암 버몰(William Baumol)과 같은 학자들은 이번에 열린 AEA 학회에서 “(기업가정신을 하나의 분명한 개념으로서 학문적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R&D에 대해서도 여느 투자 결정과 마찬가지로 모델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버몰에 따르면, 우리가 혁신(innovation)이라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고작 기존의 아이디어를 점진적으로 개선시킨 것에 불과하다. 형광등, 교류전기, 제트 엔진과 같은 진정 획기적인 발명(breakthrough)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버드 경제학 교수 프레드릭 쉐러(Frederic Scherer)는 이런 극소수의 획기적인 발명은 모두 기성 기업의 체계적 R&D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오직 해당 발명품 때문에 이제 갓 태어난, 허름해 보이는 신생 기업의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버몰도 이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대부분의 획기적 발명은 기존의 기업이 아닌 독립적인 몇몇 사람의 손에 의해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외로운 기업가(lone entrepreneur)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획기적 발명뿐이고,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획기적 발명을 꿈꾸며 열망하는 유일한 부류도 그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알쏭달쏭해 보이는 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버몰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였다.
우선 그는 “외로운 기업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획기적 발명뿐”이라는 설명에 숨어있는 역설을 들춰냈다. 즉, 획기적 발명이란 기본적으로 일상적 혁신에 비해 훨씬 어려운 과업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경험과 자본력 면에서 일천한 신생 기업가가 만들어내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 전쟁사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발명품으로 대접받는 최초의 항공모함 키티호크호는 실제 보잉 737기를 747기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상적” 혁신에 비해 비용이나 수고가 훨씬 적게 들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말 획기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생각 외로 굉장히 단순한 발견이나 착상에서 비롯되며 오히려 이런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는 후속작업들이 훨씬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외로운 기업가들만이 이 세상에서 획기적인 발명을 열망하는 유일한 부류”라는 설명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2003년 캐나다에서 조사한 1,091건의 발명 중에서 실제 상품화로 이어진 경우는 7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서 6건만이 1,400%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거둔데 반해 45건은 금전적으로 실패를 보고 말았다. 발명에는 많은 리스크가 수반되며, 발명 그 자체가 곧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인 셈이다.
합리적 “경영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위험천만한 일에 기업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실탄을 사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기업가(entrepreneur)는 자신의 꿈을 좇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광기” 때문에 그들만이 이런 위험천만한 일에 도전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버몰 자신도 “기업가”의 중요한 덕목으로 이 “광기(touch of madness)”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이 “광기의 경제학”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유력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entrepreneur는 일반적인 경영인과는 달리 “돈이 아닌 자신의 꿈과 아이디어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기업가(entrepreneur)야말로 획기적인 발명 뒤에 숨어있는 위험스럽고 고통스런 노력을 가장 낮은 비용에 감당해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또 하나의 경제주체라는 새로운 미시경제학적인 관점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과연 누가, 그리고 왜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하필이면 이처럼 험난한 ‘기업가’의 길을 원하게 될지에 대한 답은 결국 “경제학”의 범주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자료: 미국경제학회 웹사이트(aeaweb.org), 이코노미스트
※ 작성자: 워싱턴무역관 김민정 통신원 (
iowehim@hanmail.net)
출처: 코트라